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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 KANG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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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보상 관련자 이후 어떻게 되었나?

작성일22-04-18 12:21 조회 56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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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3 사건 보상은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

제주 4.3 사건 관련자 이후 어떻게 되었나?

4.3과 관련된 사람들 대부분은 4.19혁명을 기점으로 많이 축출당하거나 사망했다. 면밀히 들여다보면, 좌파 측 사건의 주동자인 김달삼은, 협상이 결렬되자 북한으로 도망갔다가, 6.25 전쟁 때 무장공비 지휘관으로 강원도 쪽을 헤집다 정선군에서 처형당해 죽었다. 김달삼이 북한으로 향한 후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군사부장과 제주도 인민유격대 사령관자리를 넘겨받은 이덕구는,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집중사격을 받고 사살됐다. 유격대가 무너져가고 도민들의 희생이 누적되는 가운데 투쟁을 중단하고 대피 생활을 지시했던 유격대 사령관 송원병, 조직부책 백창원, 군사부책 고승옥은, 이에 반발한 대원들 손에 죽었다. 우익 측 인물 중 강경 진압을 지시한 조병옥은 4.19 혁명 전 병으로 사망, 탁성록은 언제 죽었는지 모르나, 학살을 저지른 데다가 마약쟁이라 오래 못 살았을 것이고, 김창룡은 이승만 정권 밑에서 충실하게 개 역할을 하다가 1958년에 프래깅당하고, 김종원 역시 4.19 혁명 이후 병으로 사망한다. 미군정 치하에서 제주지사를 역임하며 서북청년단을 제주도 내 공직에 앉혀 불씨를 만든 유해진은, 인민군에게 붙잡혀 전주형무소에서 죽임을 당했다. 최덕신, 송요찬 정도가 예외적인 경우로 최덕신은 박정희 정부 때까지 잘 있다가 중간에 내쳐지고 1986년에 월북하여 1989년까지 살다가 죽었으며 송요찬은 정군운동으로 강제 예편되기는 했지만 5.16 군사반란 이후 국방장관, 외무장관을 역임하였고 인천제철 사장을 지냈으며 죽기 몇달 전인~1980년에는 국정자문위윈회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이렇게 4.3 관련자들은 최덕신을 제외하곤 이승만 정권 중 사망하거나, 이승만 정권 붕괴 후 쫒겨났지만, 그중 아무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미 죽은 사람은 처벌할 수 없었고, 반공에 의해 4.3 사건이 부정되면서, 그나마 살아있는 사람마저도 놓칠 수밖에 없었다. 끝내 처벌받은 무장대 측 인물 역시, 민간인 학살이 이유가 아니라 공산주의자라는 이유에서 처벌받았을 뿐이었다. 한편 학살을 방조하고 묵인한 미군정 역시 사죄나 반성이 없이 본국으로 복귀했다.

* 제주 4.3 사건 보상은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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